장애여성공감 (8)
| 1998.2.14 | 장애여성공감 창립 |
| 1998.5~ | 현재 장애여성공감 교육과정 진행 |
| 1999.4~2006.12 | 장애여성 전문잡지「공감」창간호~9호 발간 |
| 2001.3.22 |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
| 2001.8.31 |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개소 |
| 2001.9~2005.8 | 장애여성 인권캠프 |
| 2002.11~2005.10 | 장애여성공감 난장(야외 퍼포먼스 행사) |
| 2002.12 | 장애여성 다큐멘터리 ‘거북이시스터즈’ 제작시사회 |
| 2003.4~2005.4 | 장애인의 날 행사 ‘장애여성의 날’(4월19일) 개최 |
| 2003.4 |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 거북이시스터즈 공동체상 수상 |
| 2003.7 |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 결성 |
| 2003.10~2006.11 | 춤추는 허리 연극프로젝트 정기공연(4회공연) |
| 2003.11 | ‘또하나의 문화’ 고정희 자매상 단체상 수상 |
| 2005.1 |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개소 |
| 2005 | 장애여성공감 난장 2005(전시회) “일평단심” |
| 2005 | 세계여성학대회 전야제 초청공연 “그녀가 온다” |
| 2006. 6~2006. 8 | 장애여성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미디어워크숍 |
| 2006. 9.1 |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개소 5주년 기념파티 |
| 2007. 3 | 장애여성 문화접근권 확보를 위한 영상교육 |
| 2007. 3.8 | 세계여성의 날 기념 영화제 |
| 2007. 3 |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일하는 쿠키공장 ‘춤추는베이커리’창업 |
| 2007 | 장애여성공감 캠프 ‘오로지, 러브 앤 피스’ |
장애여성공감은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사회의 주변부에서 장애를 이유로 분리되어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알리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며, 이를 통해 장애여성들의 경험을 드러내고, 장애여성들이 가진 욕구를 표현하며, 장애를 가치절하하지 않고, 장애여성의 공통된 의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장애여성공감의 역사, 출발부터 지금까지 이야기
○ 1998.2.14 장애여성공감 창립
○ 1998.5~현재 장애여성공감 교육과정 진행
○ 1999.4~2006.12 장애여성 전문잡지「공감」창간호~9호 발간
○ 2001.3.22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 2001.8.31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개소
○ 2001.9~2005.8 장애여성 인권캠프
○ 2002.11~2005.10 장애여성공감 난장(야외 퍼포먼스 행사)
○ 2002.12 장애여성 다큐멘터리 ‘거북이시스터즈’ 제작시사회
○ 2003.4~2005.4 장애인의 날 행사 ‘장애여성의 날’(4월19일) 개최
○ 2003.4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 거북이시스터즈 공동체상 수상
○ 2003.7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 결성
○ 2003.10~2006.11 춤추는 허리 연극프로젝트 정기공연(4회공연)
○ 2003.11 ‘또하나의 문화’ 고정희 자매상 단체상 수상
○ 2005.1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개소
○ 2005 장애여성공감 난장 2005(전시회) “일평단심”
○ 2005 세계여성학대회 전야제 초청공연 “그녀가 온다”
○ 2006. 6~2006. 8 장애여성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미디어워크숍
○ 2006. 9.1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개소 5주년 기념파티
○ 2007. 3 장애여성 문화접근권 확보를 위한 영상교육
○ 2007.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영화제
○ 2007. 3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일하는 쿠키공장 ‘춤추는베이커리’창업
○ 2007 장애여성공감 캠프 ‘오로지, 러브 앤 피스’
① 장애여성공감 명판을 걸다.
1998년 장애여성공감 아홉 명의 여성들이 겁없이 덜컥 세상에 ‘장애여성공감’이라는 이름을 턱하니 걸고 나섰다. 무지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얼굴을 내밀었는데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없었다. 장애여성의 독립이 그렇듯이 조심스럽고 두렵고 가진 것 없는 그렇게 나섰는데 우리에게 아무도 관심 없었다. 그저 여성운동 한답시고 나선 잘난척하는 여자들 중에 특이하게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있다는 그것에 곱지 않은 시선뿐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린 한국에서 장애여성 최초 조직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하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렇게 시작했다.
② 장애여성전문잡지 ‘공감’창간하다.
1999년 고덕동 두 칸짜리 장애여성 셋의 독립한 방에서 거의 매일 모여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또 하고 장애있는 나의 몸이 왜 장애여성이라 불리어지고, 장애 있는 나의 몸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부정해오던 장애와 나의 몸을 탐색하고 나의 몸을 인정하고 나의 몸이 가벼워지기 위한 글쓰기 작업을 하였고 그것을 잡지로 만들어 내놓기로 했다. 어설펐지만 직접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편집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페이지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들였던 ‘공감’이 나왔다. 그 감동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장애여성들에게 ‘공감’을 포장해서 하나하나 주소를 손으로 써서 보내기 위해 둘러 앉아 신나게 웃었던 기쁜 순간이 있었다. ‘공감’잡지는 지금도 장애여성의 삶을 담아내는 지면으로 쭈-욱 나오고 있다.
③ 첫 토론회, ‘정신지체여성에게 7년 동안 가해졌던 성폭력사건 토론회’를 열다.
1999년? 2000년? 강릉 음촌리에서 정신지체여성에게 가해졌던 성폭력 사건이 처음으로 정신지체여성의 성폭력사건이 사건화 되었고 ‘강릉여성의전화’가 중심이 되어 공대위가 만들어지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활동이 있었다. 이때 장애여성공감은 이 사건을 접하고 연대참여를 하면서 공감활동가가 강릉까지 연대활동을 하러 다녔다. 그 때까지 장애여성에게 가해져왔던 성폭력이 사회문제가 안 되던 때였지만, 장애여성공감은 더 이상 장애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 안 된다는 고민을 하며 토론회를 준비 하였다.
고덕동 방안을 온통 어질러 놓고 무엇이 그렇게 좋았던지 대형홍보지에 글자 하나씩 붙이며 언젠가 이런 일들이 사회에 알려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참 신나게 준비했고 정동 성프란치스코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④ 장애여성공감교육과정을 열다.
1999년 5월 정립회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공감활동가의 자동차 ‘세피아’ 우리의 애마는 늘 이 날이 되면 뚱뚱해진 몸으로 바퀴가 언덕 오르기를 버거워 했다. 세피아 안에 수동휠체어 두 대와 장애여성 네댓명이 타고 김밥 커피 음료수 브루스타와 주전자와 잔들과 명찰과 발제 자료들과 벽보와 여러 물품들을 챙겨들고 바쁘게 정립회관 세미나실을 빌려 교육과정을 진행했다. 비오는 날에는 회원들이 많이 올 수 없기에 현관에서 회원 한 사람씩 나타날 때면 얼마나 기뻤었던지!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토론하면서 진지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장애여성 문제뿐만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문제와 성매매 문제까지 다양한 사안을 다루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간의 연대감이며 다양한 장애여성의 얘기가 있는 오픈된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여성들만의 공간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만나고 고민하는 곳이다.
⑤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내다.
2000년 11월 간판도 없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었는데 용감하게 명일동에 세종프라자 705호 열쇠를 따고 우리 사무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덕동 집에서 임시 사무실로 쌓였던 짐을 옮기며 너무 기쁘면서도 걱정이 컸다. 과연 우리가 사무실을 몇 개월이나 운영할 수 있을까? 당장 월세를 언제까지 마련 할 수 있을지 몰랐고 과연 함께 활동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우리 가슴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돌을 매달아 놓은 것만 같았다. 그 때는 오늘이 되도록 세종프라자 610호에서 우리가 건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매월 월세를 걱정하면서도 어느 순간도 여유로운 때가 없었음에도 큰 적자 없이 장애여성공감은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모이는 신비를 보여주고 있다.
⑥ 장애여성공감 인권 캠프를 열다.
2001년 제1회 서울의 봉도 청소년 수련원 파란 잔디밭 위에 펼쳐진 플랜카드의 흰색 바탕에 보라색으로 써진 ‘장애여성공감인권캠프’라는 글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장애여성만의 단체가 가능할 것인가? 장애여성들이 모여서 행복한 캠프가 될 것인가? 하는 의심의 시선을 받았던 우리가 언젠가 우리도 할 수 있는 날들이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우리는 그 해 시작하고 있었다. 이 후 장애여성공감의 캠프는 특별하다는 소문이 날만큼 독창적이고, 신선한 감동을 주는 캠프로 지금도 자리 잡고 매년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캠프팀을 모집하여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캠프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러운 여성연대가 이루어진다. 그러한 팀워크 안에서 주제에 맞는 상상력은 놀라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멋진 캠프를 만들어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캠프에서 장애여성 비장애여성 여성이라는 연대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⑦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를 열다.
2001년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전문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공감활동가들 전원이 성폭력상담원교육을 받고, 장애여성 중에는 제도교육을 받은 사람이 몇 명되지 않아도 중증장애여성이 주체가 되는 단체로서 장애여성의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은 상담원들이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상담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누가 장애여성을 성폭력을 하겠느냐고 말한다. 성폭력을 당할 사람, 성폭력을 당할 사람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장애여성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더욱 장애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상담소는 장애여성 피해자들의 편에서 장애여성의 몸과 마음의 치료와 법적지원으로 가해자들을 처벌하며 장애여성이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법률 세미나와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도 상담소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⑧ 거북이시스터즈를 만들다.
2002년 ‘거북이시스터즈’는 장애여성공감과 여성영상집단‘움’이 공동 제작한 영화이다. 장애여성은 이 사회에서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성도 장애인도 아닌 것처럼 때론 장애인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여성이 되어야 하는 장애여성의 삶을 영상을 통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표현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단순히 장애여성 세 명의 삶을 보여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양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유쾌하게 살아가는 각자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영화가 장애여성을 대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영화에서 장애여성의 독립의 어려움과 가능성, 비장애중심사회의 폭력성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운동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자 한다. ‘거북이시스터즈’는 ‘2003여성영화제’에서 여성공동체상을 수상했다.
⑨ ‘춤추는 허리’를 만들다.
남성중심의 장애운동 안에서 장애여성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의 방식을 고민해오던 운동의 방식의 하나로서 문화운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동안 우리 장애여성들의 잠재되어 있던 예술적 끼를 펼칠 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춤추는 허리’에는 열정적인 장애여성들이 모였고, 배우들의 자기 경험을 풀어내는 워크샵을 통해 연극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독특한 작법은 장애여성들의 무대가 주는 신선함과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5여성영화제 폐막식’의 퍼포먼스와 ‘2006년 세계여성학대회’의 공연은 세계여성학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양한 장애 있는 여성의 몸도 여성의 몸임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춤추는 허리’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지금도 꿈을 실현하고 있다. 앞으로도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회화 시키고 관객과 하나되는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⑩ ‘난장’을 열다.
장애여성운동을 한다는 것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향한 꿈을 꾸고 그것을 실천시키는 것이고 도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은 많은 회의와 세미나와 글쓰기 교육 등을 조용히 해왔다. 그러다가 ‘난장’이라는 것을 기획하면서 거리에서 맘껏 장애여성들이 소리를 내어 보자는 것이었다. 첫 ‘난장’은 2002년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여성의 장애 있는 몸에 또 다른 주제가 있는 패션쇼를 진행하였다. 장애여성들 스스로가 만든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부터가 장애여성도 이 사회도 새로운 경험들이기도 했다. 난장의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매년 다른 장르별로 시도 되었다. ‘2004년 난장’에서는 장애여성의 문제를 노래가사를 개사해서 부르고, 연극, 퍼포먼스를 하였으며 또 다음엔 미술을 빌려 다양한 발표를 하였다. 이러한 문화를 통해 장애여성 문제를 표현하는 도전은 장애여성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날 수 있었고, 여러 가지를 접하게 됨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더 많은 활동가를 양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⑪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을 열다.
장애여성공감의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 되어온 고민의 하나는 장애여성의 선택적 삶이다. 장애여성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가족에게 의존적 존재로 살던가 아니면 시설밖에 갈 수 없는 상태가 현실이다. 또한 장애여성도 여성이기 때문에 누구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밖에는 장애여성의 미래에 이 사회는 계획이 없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그 어떤 삶이던 장애여성 스스로 선택한 삶이어야 한다. 장애여성도 자기 삶의 주체로서 독립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독립을 재해석하고, 장애여성에 대한 성인지적관점이 있는 평등한 독립을 위한 2004년에 ‘장애여성공감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센터를 개소하였다.
‘장애여성을 위한 활동보조인 매뉴얼’ 2004년 제작, ‘장애여성 독립생활 인식에 대한 조사’2004년 제작, ‘활동보조인 이용 장애여성 매뉴얼’2005년 제작, 장애여성자조모임 ‘장애여성반란’결성, ‘장애여성활동가 양성교육과정’2007년 진행을 해왔다.
장애여성의 독립생활을 위해 숨센터 활동가들의 숨소리는 늘 가쁘다.
⑫ ‘춤추는 베이커리’ 문을 열다.
2007년 장애여성공감 쿠키공장 ‘춤추는베이커리’는 이제 막 문을 열었다. 장애여성들의 노동 현실을 얘기하자면 기나긴 설명들이 따른다. 그러나 단 하나 ‘장애여성도 일하고 싶다’는 외침만은 분명하다. 장애여성공감의 고민은 노동을 하고자 하는 장애여성의 선택을 어떻게 다양하게 보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 장애여성이 일하고 싶을 때, 일 할 수 있기 위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에 쿠키공장을 해보기로 하였다. 쿠키를 만드는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 삼순이들이 자기 삶의 꿈을 쿠키의 달콤하고 영양 가득한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춤추는 베이커리’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선은 건강에 좋으면서도 맛있는 빵과 쿠키를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열심히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애여성공감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느리고 조금 더 채울 것이 있던 것처럼 그것이 장애여성과 같이 가는 것이라면 오래오래 든든한 곳이 될 것이다.
Sexual Violence Center for Women with Disabilities Society as experienced by women with disabilities is filled with discrimination, oppression and alienation, and many are vulnerable to becoming victims of violence, due to their physical or mental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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